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슐레스비히-홀슈타인 문제 (문단 편집) === 전개 === [[1848년]] [[4월 12일]], [[독일 연방]] 의회는 슐레스비히 임시정부를 인정, 프로이센의 개입을 지지하였다. 따라서 [[프로이센군]]이 덴마크에 진입, 초반에 여럿 승리를 거뒀다. 하지만 열강의 개입 없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프로이센의 예상은 빗나가고 스웨덴은 덴마크에 자원병을 파견, 영국과 러시아는 프로이센에 현상유지를 준수하란 경고를 가했고 같은 독일계 국가였던 [[오스트리아 제국]] 마저 프로이센 지지를 거부했다. 일련의 승리와 열강들의 경고 후 프로이센은 프로이센군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으로부터 철군을 조건으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임시정부 산하의 독립을 제안하나 거절당한다. 이렇게 프로이센은 한쪽에서는 독일 민족주의자들이 더 강력한 행동을 요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열강들이 위협하는 상황에 결국 협상에 임한다. 휴전이 맺어지고 프로이센과 덴마크 양측은 [[런던]]에서 영국의 중재 하에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이 덴마크와의 동군연합과 독자적 정부 모두 유지되는, 현상유지안이 제안되고 이는 영국과 러시아의 지지를 받는다. 하지만 덴마크는 여전히 슐레스비히를 덴마크에 합병하고자 하였고 결국 협상이 실패, 전쟁이 계속된다. [[1849년]] 2월, 협상 종결 이후 프로이센군은 덴마크 본토까지 진격하였고 7월에 다시 휴전이 맺어져 협상이 재개된다. 덴마크는 슐레스비히 합병에 대해서는 뜻을 굽혔으나 여전히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공국들의 모계 혈통 상속에 대해서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이에 대한 협상은 [[1852년]] 런던 의정서 조인까지 이어진다. 다만 프로이센의 전쟁으로부터 철수는 합의되어 [[말뫼]] 조약으로 프로이센과 덴마크간 평화는 맺어지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은 홀로 남겨지고 [[1852년]] 덴마크에 진압당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